북미는 교회 주변에 무덤이 있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봅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도 걷다가 보면 유대인 공동묘지를 보게 됩니다. 어느 봄날 운전을 하며 스쳐 지나듯 보게 되었는데 따뜻한 양지쪽에 많은 무덤들이 있고, 어느 한 무덤 앞에는 항상 꽃이 있습니다. 볼 때마다 새로 준비한 듯 생생한 꽃입니다. 누구의 무덤인지,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지나갈 때마다 오늘은 무슨 꽃이 꽂혀있나 관심을 갖고 차창 밖으로 내다보게 됩니다.
그러다가 문득 직업병이 또 발동을 합니다. 무덤 앞에 있는 꽃은 보기에라도 좋지요. 그런데 보면 자신의 인생의 과거라는 무덤에 꽃다발을 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말이야,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아?, 내가 소싯적에는, 내가 학교 다닐 때에는, 내가 너만했을 때에는….” 학교 다닐 때 반장 한번쯤 안 한 사람 없고, 공부 못했다 하는 사람 없습니다. 항상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고 화려한 꽃다발을 놓게 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무덤 속의 시체처럼 지독히 냄새 나고 아픈 기억을 마음속 한편에 숨기고서 말입니다. 현재가 불만스럽고 미래의 꿈을 상실하면 나도 모르게 자꾸 과거에 꽃을 놓게 됩니다. 나를 알아 달라는 표현이지요. 언젠가 식탁에서 아이들과 대화를 하다가 아빠도 그런 것 같다고 합니다. 벌써 많은 꽃들을 봤다는 겁니다. ‘나는 그런 적 없는데…’ 하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이 정확하지요. “아빠 그런 사람을 ‘꼰대’라고 불러요” 아이들이 ‘꼰대’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한류의 부정적 영향입니다.
과거도 소홀히 해서는 안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미래 앞에 꽃다발을 놓는 일 입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내가 어떤 꽃다발을 놓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미래의 꽃은 꿈입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 씨앗 하나 심어야겠습니다. 그 씨앗을 심기 위하여 요즘 노력하는데 바로 ‘동행’을 통하여 하나님의 꿈을 깨달아 우리 벧엘 밭에 씨앗으로 심고 싶습니다. 45주년 과거 그리고 오늘은 현재를 시청하시게 됩니다. 다음 주부터 미래를 모아보려고 합니다. “선교 그리고 다민족 공동체” 꽃 다발을 벧엘 미래에 놓고 싶습니다. 선교 잘하는 교회 즉 온 교회 성도들이 선교적 삶을 살고 선교를 보내고 선교(영혼구원)에 그 누구도 빠짐 없이 동참하는 교회를 꿈 꿉니다. 더 나아가 우리 주변에 여러 민족을 섬기는 다민족 공동체 교회를 이루는 것이 꿈입니다. 과거는 잊고 현재를 믿음으로 살아내어 미래의 꽃을 준비합시다.
“믿고 사랑하고 화목하여 함께 일하는 교회”
주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가 되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최선을 다하고
교인이 한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함께 선한 일 (꿈) 을 열심히 하는 교회
벧엘교회가 가야 할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