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17일(수) 벧엘 Q.T.

✔벧엘QT 전체보기

<신명기22:1~12>  노득희 목사

네 형제에게 돌릴 것이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내 것이 아닌 가치 있는 물건을 보았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는지요?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할까를 고민하며 사시나요? 실 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이 대처해야 할 삶의 원리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탐심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며 삽니다. 정당한 힘과 능력이 있으면 옳은 방법으로 소유하면 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탐심은 정당치 못한 도적질로 연결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십계명의 8계명인 도적질 하지 말라는 계명의 아주 구체적 내용으로 21장은 시작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부분을 살펴보며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고 형제 라고 하는 반복적 강조를 깊이 생각해봅시다.
 
1절. 네 형제의 소나 양이 길 잃은 것을 보거든 … 양은 참 연약하고 길을 잘 못 찾는다. 못 본체 하지 말아라 가 반복된다. 소나 양이 길을 잃으면 죽든지 아님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어 손해를 많이 보게 된다. 내가 못 본체 한다는 것은 죽어도 괜찮다는 것이요 형제가 손해를 보는 것에 방조하는 것이다. 형제의 슬픔을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그런데 너는 반드시… 이 단어가 중요하다. 반드시 네 형제에게 돌려주도록 하라는 것이다. 소나 양의 생명을 구할 뿐 아니라 형제의 재산에 해를 끼치지 않게 해주는 것이다. 내 양이 소중하면 형제의 양도 소중한 것이다. 내 자녀가 귀하면 형제의 자녀도 귀히 여겨야 한다. 그래야 가나안 안에 이스라엘 공동체인 하나님 나라가 나타난다. 우상의 문화로 가득한 가나안 가운데 빛과 소금으로 세우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나타나고 있다.

출애굽기 23장에는 원래 원수의 잃어버린 소와 양으로 기록되어 있다. 신명기에는 원수가 형제로 바뀐다. 이 부분은 결론에서 다루고자 한다.
 
2절. 보통 소와 양에게는 주인의 표식이 있다. 그래서 주인이 누군가를 쉽게 알 수 있다. 멀리까지 데려다 주는 수고가 힘들어 하여 못 본체 할 수 있다. 주인이 멀리 산다면 그럼 나의 집으로 끌고 가라고 까지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 생명을 보호하여 주고 형제의 재산을 잘 관리하여 형제에게 돌려 줄 때까지 자기 소유처럼 보호하라는 것이다. 여러분 양과 소가 아니라 만일 나의 자녀라고 하면? 우리 사회에 인신매매 뿐 아니라 잃어버린 자식을 둔 부모가 참 많은데 그 처참한 슬픔 아픔을 겪지 않아도 된다. 자녀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다면 이런 세상을 얼마나 간절히 원할까!
성경은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잃어버린 양은 바로 죄인을 의미하며 바로 우리 자신을 지칭하고 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잃어버린 아픔 그리고 생명의 소중함을 잘 드러내주신다. 생명을 살리고 형제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1,2,3,4 절에 형제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7번이나 반복한다. 출애굽기의 원수가 형제로 바뀌어 가나안 입성 전 모세의 설교에 나타난다. 원수 또는 미워하는 자가 형제로 변해있다. 광야생활 40년 가운데 미워하는 자, 원수, 적대감으로 분열되어 있었을지라도 요단강 건너 세례와 말씀으로 새롭게 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형제로 여기라는 하나님 명령이다. 교회 안에 있는 성도는 하나님 안에 형제 자매이다. 교회생활의 시간이 오래 지나가면서 다시 미워하고 원수가 되어가는 모습이 있다면 오늘 말씀이 깊이 새겨져야 한다. 비난 비방 정죄를 통하여 미움 원수가 되어간다. 그러나 사랑 용납 관용 희생을 통하여는 형제와 자매가 되어간다. 시루와 허물은 누구에게서나 있다. 현미경으로 보는 것은 하나님 자리에 내가 앉는 것이다. 십자가 사랑으로 이웃을 대해야 형제 자매가 된다. 그래야 형제의 상실을 못 본체 하지 않고 생명을 살리고 형제의 슬픔을 기쁨으로 돌려주는 은혜로운 성도가 되는 것이다.

찬양: 

형제의 모습 속에 보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