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라

노래하시는 것을 좋아하시나요? 아님 들으시는 것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후자입니다. 저에게 음악은 사치였습니다. 고등학교 다니며 어쩌다가 시내버스를 타고 학교에 갈 때 흘러나오는 라디오 음악을 듣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물론 주일학교에서 찬양을 하곤 했지만, 시골동네 교회 풍금에 맞추어 박자 및 음정도 틀리며 열심히 크게만 부르면 은혜로운 것이었던 것입니다. 누구 하나 박자 음정을 잡아 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고1부터 아버지가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가정 예배를 드렸는데 음정이 다 안 맞아 서로 웃다가 예배가 중단 된 적도 수 없이 많았습니다. 꾸준히 각자 원하는 대로 불렀습니다. 아버지 왈, “곡조 있는 기도란다 그냥 불러~~~~” 지금도 찬송가 가운데 그때 습관으로 틀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반주자 및 귀에 거슬렸던 분 들에게 죄송하며 이해를 구해봅니다. 그래서 지금도 부르는 것 보다는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가 눈에 확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노래는 사람들만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만든 모든 피조물들이 다 노래한다고 합니다.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사49:13) 하늘이 노래하는 소리를 들어보셨나요? 땅이 노래 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들어보셨나요? 산들이 노래하는 소리 들어보셨나요? 이사야는 지금 감격에 겨워 주변 모든 것들 바라보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찬양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기 때문입니다. 고난 당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 땅이여 노래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사야의 그 외침이 곧 노래인 것 이지요.

우리 민족은 깊은 노래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노래가 한(HAN)의 노래라고 알았습니다. 아리랑이 바로 그 대표적인 노래일 것입니다. 오랜 고난에 가슴 깊이 사무친 노래. 그래서 흉내 내기 어려운 깊은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인 것입 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 깊은 노래가 흥이 되어 살아나서 음색이 바뀌고 춤도 바뀌고 마음도 바뀌었습니다. “범이 내려온다” 가 온 세계를 들썩거리게 만들었습니다. 흥이 나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고난 끝에 주어진 위로를 받은 민족으 로 노래가 재해석 된 것입니다.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 노래를 여러분 들으며 일어서고 싶고 따라 부르고 싶고 가슴이 벅차 오르는 것은 왜 일까요? 아는 분 사업장에 심방을 갔더니, 이 어려운 시기에도 이 노래를 부르시며 춤을 추고 계십니다. 사람은 고난 가운데서도 노래합니다. 즐거워도 노래 합니다. 그런데 음색이 무척 다릅니다. 춤 사위도 다릅니다.

사순절을 보내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회개의 시기로 이해가 되고,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앞에 할말 없는 죄인의 모습으로 지내야 경건할 것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 잘 생각해보면 그것이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의 모습일까요? 우리를 허물과 죄로 죽었던 완전한 죽음에서 예수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하셨습니다. 그럼 용서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자녀들의 가슴에서 입에서 노래가 사라지는 것은 무척 슬픈 일입니다. 자녀를 키우다 보면, 아침에 노래 부르는 딸의 목소리를 들을때 너무 행복하고 안심이 됩니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 한숨 섞인 소 리를 땅이 꺼지듯 내면 가슴이 철렁 내려 앉게 됩니다.

노래합시다! “하늘이여 노래하라, 산들아 노래하라! OO야 노래하라!” 이름을 넣어서 외치십시오, 그리고 노래하시기 바랍니다. 영혼의 숨 구멍이 확 터져나 올 것입니다. 하늘, 땅, 산, 시냇물, 새, 별, 나뭇잎, 곤충 그리고 집에서 기르는 개도 노래를 하는데 왜 우리가 노래를 못할까요! 이 사순절에 이사야가 외친 노래가 회복되시기를 바랍니다. 위로 하시는 하나님! 고난 당하는 자녀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