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16일(화) 벧엘 Q.T.

✔벧엘QT 전체보기

<신명기21:18~23>  노득희 목사    

패역한 아들(탕자)

<18~21> 모세는 또 거역하는 아들을 징벌하는 일에 대해 명했다. ‘완악하다’는 원어(소레르)는 ‘완고하다, 반항적이다’라는 뜻이며, ‘패역하다’는 원어(모레)는 ‘불순종적이다, 반항적이다’라는 뜻이다. 완악하고 패역한 자녀는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불순종하고 반항적인 자녀이며 방탕하고 술에 잠겨 사는 자로 묘사되었다. 이런 자녀는 그 부모가 그를 데리고 성문 앞 장로들에게로 나아가 그 사실을 고하고 모든 사람들이 돌로 그를 쳐죽여야 하였다.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십계명의 제5계명에서 명하신 매우 중요한 의무이다. 부모 공경과 순종이 무너지면, 그 사회는 결국 무너지고 말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사회가 그렇게 부도덕하게 되기를 원치 않으셨다. 신약성경도,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라고 말했다(엡 6:1-3).

자녀가 부모 공경과 순종의 의무를 지키지 않는 것은 사형에 해당하는 큰 죄악이다. 율법은 제5계명을 어기는 자에게 사형을 선언하였다. 출애굽기 21:15, 17,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잠언 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우리는 오늘 이 말씀과 더불어 탕자의 비유(눅15장)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패역한 아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이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이다. 오늘 신명기 규례에 따르면 누구든지 이 아들을 보고 돌로 쳐 죽일 수 있다. 그래서 아버지는 돌아오는 아들이 거리가 먼데도 알아보고 먼저 달려가 영접한다. 눅15:33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아버지가 살려낸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살려내시는 분이다. 너무 좋다!  
 
<22~23>모세는 사형하여 나무에 단 시체의 처리에 대해 명하였다. 이 법은 사형수를 사형시킨 후에 나무에 단 경우에 관한 법이다. 이 법대로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 시 아모리 다섯 왕을 죽이고 다섯 나무에 매어 달았으나 석양까지만 그렇게 했고 해 질 때 그 시체들을 나무에서 내려 굴에 던져 넣고 굴 어귀를 큰돌로 막았다(수 10:26-27). 사형수를 나무에 단 것은 그 사형수에게 큰 수치이며 죄에 대한 충분한 벌이 되었으므로 그 시신을 나무에 매단 채 밤을 새우는 것은 그에 대한 지나친 학대로 간주되었다. 우리는 사형수의 시신까지도 존중해야 한다. 또 이 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증거한다. 예수께서 우리의 저주 우리의 수치 우리가 당할 형벌을 다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
 
하나님 아버지 사랑과 그 아들을 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구속의 은총이 깊이 은혜가 되는 말씀이다. 오늘 하나님 아버지의 기다리심의 마음을 생각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면 기다리게 된다. 사랑하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감싸준다. 사랑하면 내가 대신 죽고 살린다. 사랑하면 나의 모든 것을 주고 싶어진다.
 
우리를 기다리신다.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를 구원하신다.
우리를 감싸주신다.
우리를 살려주신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신다!
 
그래서 좋다!

찬양: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