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4일(금) 벧엘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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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린도전서 13:4>  노득희 목사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고 교만하지 아니하며

고전 13:4

사도 바울은 이제 사랑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기술하기 시작합니다.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성령의 은사를 설명하는 12장 과 14장 사이에 13장의 사랑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강조하며 모든 은사들 그 기초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음을 증명합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본문에 나오는 사랑의 많은 특성들이 바로 그렇게 사랑이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빛을 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도대체 어디서 이 사랑을 알게 되었을까요?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는 매우 못생긴 인물이었으나 매우 다부지고 신념에 찬, 약간은 잔인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젊은이였다고 합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아 가족을 등지고 떠난 마치 사랑과는 아무 관계가 없을 것처럼 보이는 이 사람이 어떻게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사람의 가슴을 울린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것일까요? 참 신기합니다.
그 사랑은 바로 예수에게서부터 배우고 본 받은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을 드라마, 영화 혹은 책으로부터 배우는 것은 온전치 못합니다. 그래서 사랑을 눈물 또는 아픔이라고 배우게 됩니다. 아니요 사랑은 행복한 것입니다. 예수로부터 배우셔야 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바울은 사랑의 속성을 기술하며 가장 중요 한 것을 제일 앞에 기술했습니다. 오래 참는 것이 가능한 것은 사랑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오래 참는 다는 것은 자신의 본성을 거슬러 더 높은 차원의 고상한 목표를 향하여 가고자 하는 고통을 견디어 내는 것입니다. 무조건 참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새로운 목표 즉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기 위하여 죄 된 본성을 거슬러 싸우는 것입니다. 그 싸움을 지속하는 것이 오래 참는 것이지요. 고통은 쓰나 열매는 달죠. 예수를 닮아가는 것이고 천국을 경험하게 되니까요.

단순히 내가 교회 다니니까 내가 직분이 있으니 참는다 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 꼭 이루어 내고 싶은 거룩한 목표를 바라보며 참아내는 지속적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내가 지난 번에도 참았는데 이번에는 못 참아 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극복의 싸움이지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영적 싸움이 아닌 것입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세 가지를 후회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좀 더 즐겁게 살 것을’ 하고 후회한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웃고 즐겁게 살아도 될 것을 짜증내고 불평하다가 세월을 허송합니다. 기왕에 주어진 생 즐겁게 살 것을 제 아내에게 한번 웃어주지 못하는 남편, 기왕에 일하는 것 웃으면서 일하지 못하고 짜증내는 사람, 자식을 보고도 한번 웃어주지 못하는 아버지는 참으로 불쌍합니다. 둘째는‘좀 더 베풀며 살 것을’ 하고 후회한답니다. 어차피 없어질 물질 남에게 인심 쓰면서 살면 얼마나 좋습니까? 다 사라진 다음에야 후히 쓰고 나누며 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합니다. 살아있는 동안에 후히 쓰고 살 수 있는 사람 복 받은 사람입니다. 쥐고 살아도 나중에 죽을 때는 제 것 아닙니다. 세 번째는 ‘좀 더 참고 살 것을’ 하고 후회한답니다.
 
순간을 참지 못하여 일생 가슴을 치며 후회하는가 하면, 여러 가지로 당하는 어려움도 많이 있습니다. 성급한 말을 참으시기 바랍니다. 성급한 분노를 참으시기 바랍니다. 이웃을 향한 판단을 유보하시기 바랍니다. 타인을 향한 비난을 유보하시기 바랍니다. 성도를 향한 정죄를 유보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도 참아주시고 기다리시는데 우리가 누구기에 오래 참아내지 못하고 인생에서 그 사람을 지워버리려고 애를 쓴단 말입니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의 자비와 인자하심을 아는 사람은 참습니다. 오래오래 참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지요..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늘 심령에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주관하고 역사하면 참을 수 있습니다.
 
교부 터툴리안은 “참는 것은 여자를 아름답게 하고, 남자를 가치 있게 만든다. 소년의 인내는 사랑을 받고, 청년의 인내는 칭찬을 받고, 노년의 인내는 존경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합니다

벧후 3:8,9

찬양: 

울어도 못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