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15일(화) 벧엘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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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5:29~34>  노득희 목사

날마다 죽노라

고린도 교회에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도의 몸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부활을 믿으면 내세적 신앙으로 고난과 십자가 지는 삶을 살고 부활을 믿지 않으면 현세적으로 자기 유익을 위하여 살게 됩니다. 바울의 논지입니다. 참고로 특별히 오늘 본문 가운데 29절은 그 뜻을 이해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 받는 것,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릅니다. 성경에 여기만 나옵니다. 성경학자들 그리고 교회사 연구 학자들에 의하면 이 구절의 근거를 찾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넘어가기로 합시다.
 
30절에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언제나 위험을 무릅쓴다고 합니다. 31절에 더 나아가 위험을 넘어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합니다. 이 두 구절들은 부활과 반드시 연관하여 봐야 합니다. 특별히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하여 애쓰는 것은 신령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고린도 교회에 오해가 된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 가운데 신령하면 능력이 있고 건강하고 칭송을 받으며 삶이 온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분히 현세적 복의 개념을 신령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신령함 그리고 사도권을 공격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종 신령한 자라고 하면서 왜 늘 고난을 당하고 실패하고 어려움 속에 있습니까? 라고 사도권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신령한 자에게는 부활의 믿음과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이 있어 그 약속을 바라보며 부활의 증거 자로 십자가 지는 길을 걸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고전4:6~13절 까지 다시 자세히 읽어보면 이해가 갑니다.
너희는 신령한 것이 부요하고 왕노릇하고 지혜롭고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미련한 자, 약한 자, 비천하고 헐 벗고 매맞고 비방을 당하고 있다. 하나님이 그 종들을 쓰는 방법이다 라고 역설합니다. 이 세상은 보상을 받는 곳이 아니다. 이 세상은 궁극적 목적지가 아니다. 너희는 이미 배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 왕 노릇하고 있다.

우리의 영원한 상급과 지위는 내세에서 일어날 것이다. 여기서는 훈련되고 만들어져 가는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신령함에 관한 싸움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신자들에게 나타나는 싸움입니다. “신령하면 형통합니다. 신령하면 병이 걸리지 않습니다. 신령하면 실패하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을 바울이 강하게 비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활의 증인들을 죽이기로 작정한 자처럼 미말에 두신다. 만물의 찌끼 같이 하셔서 이 세상의 헛된 것을 사모하지 않는 부활의 증인으로 하나님이 쓰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자들이다. 이 세상에서 어떤 상 무슨 대접을 받겠느냐? 우리에게는 그런 생각 없다.

바울의 답변은 명확합니다. 왜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고 매일 죽느냐? 부활과 영생을 목표로 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베푸신 은혜를 나누기 위하여 환란과 고난을 자처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예수께서 보여 주신 하나님 나라 진리의 길이다. 맞지요. 이것이 신령한 사람의 판별식 입니다.

영원한 소망을 위해서 바울은 매일 죽습니다. 현세의 자랑을 목표로 살지 않습니다. 부활이라는 것은 “내가 이제 죽어도 하나님 나라에 갈 것이다”가 다가 아니라 오늘 현실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중요한 책임을 확인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날마다 죽는다. 이 유명한 구절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2절에 맹수로 더불어 싸운다고 하는 것은 복음의 대적 자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사도행전 19장 23~41절 참고) 복음 즉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피하지 않습니다.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죽기로 작정하고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 구원 받을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부활의 증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조금 어려우면 도망가고 충성을 포기하고 돌아서고 온갖 비난과 비판으로 자기 합리화를 이루어 내는 것은 참 안타까운 것입니다. 혹시 신앙 생활 가운데 “사람을 우습게 봐” 라는 생각이 드십니까? 부활의 증인으로 살 기회입니다. 분노의 기회로 삼지 마시기 바랍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활을 믿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 마음을 나, 가족 그리고 이웃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겨내셔야 합니다. 신령한 사람입니다. 부활을 믿는 바울의 간증입니다. 부활을 믿는 성도들이 취해야 할 믿음의 태도입니다. 34절을 유의하여 읽고 마음에 담으시기 바랍니다.

찬양: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