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흑인 해방의 어머니 스토우 부인(1)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 사는 해리어트 비처 스토우 부인 집에 한 흑인 소녀가 다급하게 찾아 들어왔다. 그 모습은 너무나 애처로워 보였다. “너는 어디서 왔니?” 소녀가 대답했다. “네 저는 남부 켄터키에서 왔어요.” 소녀의 목소리는 잔뜩 두려움과 겁에 질려 있었다. “그래,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부모님은 저와 어릴 적 헤어졌어요. 기억이 잘 나지를 않아요.” 스토우 부인은 이 흑인소녀가 가엽게 느껴졌다. “걱정 말거라. 여기는 그리 위험하지 않단다. 당분간 우리 집 일을 도우면서 우리와 함께 지내도록 하자.” 스토우 부인의 다정한 말에 흑인 소녀의 눈에서는 한줄기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노예 제도는 창조주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는 제도란다.” 헤리어트가 어릴 적 아버지 라이만 비처 목사는 늘 그렇게 말하곤 했다. 해리어트의 아버지는 엄격한 칼뱅파 목사였다. 이 말라빠진 흑인 소녀를 보는 순간 해리어트의 가슴속에는 아버지의 그 목소리가 하나하나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부인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고여 있었다. 

“이제 여기는 안심해도 된단다. 그래 어떻게 그곳을 탈출하게 되었는지 말해줄 수 있겠니?” 

그 이야기는 이랬다. 하루는 이 흑인 소녀가 다른 노예들과 함께 밭에서 목화송이를 따고 있었다. 그때 무심코 옆을 보니 나이든 한 흑인 여자 노예가 아픈 기색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아주머니, 어디 아프세요?” 이렇게 묻자 그 여자 노예가 대답했다. “응. 몸이 좀 아프단다.” “그럼 방에 가서 좀 쉬시지 그래요!” “노예인 우리가 어떻게 쉴 수 있겠니.” 이 말을 들은 소녀는 너무나 딱한 마음에 가끔 자기가 딴 목화송이를 아주머니의 바구니에 몰래 넣어 주었다. 그때였다. 존이라는 나이 많은 한 흑인 아저씨가 그들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노예들 사이에서 크게 존경 받는 노인이었다. “아프면 쉬어야지 내가 네 몫까지 해주마. 걱정 말고 쉬 거라.”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모습이 그만 감시를 돌던 주인에게 발각되고 만다. “존! 자네 지금 뮐 하고 있나?”무서운 고함 소리에 모든 노예들이 벌벌 떨기를 시작했다. “예 주인님. 이 여자가 병이 난 듯해서 제가 좀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존의 말을 끝까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밥 잘 먹고 왜 아프다는 거야. 이 거짓말 장이야!.” 주인은 손에 든 채찍을 내리치며 명령했다. “존! 이 채찍으로 저 게으름뱅이의 버릇을 좀 고쳐 주거라!” “주인님 죄송합니다.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도저히 그 일만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 못하겠단 말이지. 좋다! 그럼 내가 네게 직접 본때를 보여주마. 네게서 하겠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두고 보자.” 철썩! 채찍 소리가 났다. 존 아저씨 얼굴에서는 붉은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철썩! 철석! 소리가 날 때마다 존의 얼굴과 몸에는 살점이 떨어지고 더 심한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다. 존 아저씨의 몸은 참혹한 피투성이가 되고 있었다. “존! 어떠냐? 이래도 내 말을 안 들을 테냐?” “네, 주인님 이 목숨이 붙어있는 한 일을 하겠습니다. 하지만 병든 저 여자를 때릴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말대꾸야! 이 노예 자식!” 존은 그만 의식을 잃고 말았다. “존 아저씨 정신이 드세요?” 존이 대답했다.”응, 나는 괜찮단다.” 걱정스런 모습으로 존 아저씨 옆에 둘러 앉아있던 노예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저런 잔인한 주인은 죽여버려야 해! 내가 그 일을 하겠어.” 그 때 존 아저씨가 이렇게 말했다. “안 된다! 나는 주님을 믿는 사람이야.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람을 죽일 수는 없어.” 그러면서 존 아저씨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여기 뒷일은 내게 맡기고 너희들은 모두 북부로 도망을 가거라. 북부는 사람을 노예 취급은 하지 않는 단다!” 여기까지 말한 소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눈에는 계속 눈물이 고여 있었다. 해리어트는 조용히 소녀와 함께 존 아저씨를 위해 기도를 드렸다. 

이 짧은 이야기는 바로 훗날 유명한 “엉클 톰스 캐빈”(주: 우리말로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의 원본이 되었다. 

이 소설은 남북전쟁의 도화선이 되어 노예해방을 맞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