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24일(금) 벧엘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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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19:1~15>  노득희 목사                      

다윗 왕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다

다윗 왕이 무척 슬퍼합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하며 통곡을 합니다. “내 아들아”를 4번이나 반복하여 부르짖습니다. 자신의 죄를 바라보며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 주변에는 그의 눈물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은 가족의 눈물 그리고 이웃과 성도들의 눈물을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기중심적 삶을 살아가는 현세에 눈물을 공유할 수 있는 영적 친구가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다윗을 가장 잘 알 거 같은 요압 장군 조차도 자기안위에 연연하는 모습을 봅니다.
오늘 여러분의 리더 구역장께 전화 한 통 하시며 마음을 나누면 어떨런지요?
 
<1~8> 압살롬의 죽음에 슬퍼하는 다윗을 향하여 요압이 백성들의 마음을 전합니다. 여기는 자기의 마음도 들어있습니다. 자신이 압살롬을 죽였는데 왕이 저렇게 슬퍼한다면 자신이 왕의 반역을 죽인 것이 못마땅하다는 것이기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면서 왕을 압박합니다. 왕이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왕이 젊어서 지금까지 당한 화보다 더 심한 화를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모든 백성들이 다 왕을 떠날 것이라고 합니다. 왕이 하는 수 없이 일어나 전투에서 승리하고 오는 군사들을 맞이합니다. 다윗은 아들의 죽음과 또 자신의 죄로 인하여 슬퍼하는데 요압은 자신이 다윗을 위하여 반란군을 진압하였다는 것으로 압박합니다.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하여 달라고 한 다윗의 부탁을 무시하고 창으로 찔러 죽인 요압이 왕도 압박합니다. 이러한 요압의 자세는 왕을 위한 충성이 아니라 자기의 권력과 자존심을 위한 것임이 나중에 반역에 가담함으로 드러납니다. 사람들의 충성이라는 것도 그 가면들을 벗겨내면 그 안에 온갖 욕망들이 중첩되어 있습니다.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여 주소서! 기도하게 됩니다.
 
<8~10>이스라엘은 이미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습니다. 압살롬을 따르든 자들 사이에 변론이 일어났습니다. 비록 그들이 압살롬을 기름 부어 그들의 왕으로 세웠지만 이미 죽었으니 다시 다윗 왕을 모셔오자고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변론이 일어났다는 것은 아직 다윗을 반대하는 자들도 상당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다윗이 다시 왕으로 귀환하면 압살롬의 편에 선 자들을 보복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손익계산들이 분주한 상황입니다. 손익계산으로 제자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항상 진리 되신 예수 편에 서시기 바랍니다.
 
<11~15> 이러한 때에 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연락을 하여 유다 장로들에게 말을 전합니다. 온 이스라엘이 왕을 다시 모셔오자고 하는데 왜 너희가 왕을 모셔오자고 하는 일에 나중에 되느냐고 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압살롬의 군대 장관이었던 아마사를 요압의 자리에 세우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내 골육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유다지파의 마음만이 아니라 압살롬의 반역한 자들에 대하여 유화책이 됩니다. 동시에 다윗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압살롬을 죽인 요압을 문책하며 거리를 둡니다.  다윗은 또한 유다 지파 장로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는 일을 합니다. 분열을 하나로 만드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전쟁을 통하여 갈라진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일을 이루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분 하나님을 모시는 성도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을 요청 받게 됩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왕이 한 분이어야 하듯이 한 왕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정치 경제 지연 신분이 아니라 오직 한 분 이신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줍니다.

찬양: 

주 안에 우린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