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14일(금) 벧엘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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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린도전서 3:16~23>  노득희 목사      

어리석은 자가 되라

평안의 인사를 드립니다. 주어진 본문을 여러번 정독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어진 본문은 성도가 이세상 지혜를 자랑하는 어리석음을 피하라는 것이 중요한 주제입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 에게 준 첫 편지는 1장부터 3장까지 한 단락을 이룹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문제는 무엇을 오해하여 생긴 것인가 하면 십자가를 오해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밀한 지혜인 십자가를 자신의 지혜로 바꾸어 자기의 자랑과 지혜인 것처럼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1: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 세상서 지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결함은 십자가를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로 구원 받은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구원,사랑,희생,섬김,용서,관용,자비,은혜 가 다 담겨져 있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으로 사는 성도의 삶이 십자가의 도를 아는 것이지요. 그런데 오히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이 능력을 자신들의 지혜로 대체하여 판단 시기 질투 분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예수를 믿고 교회 생활에 열심을 내고 나의 진심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틀릴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유념해야 합니다. 본인은 주를 위한다고 하는데 주를 위하지 않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수는 틀린 거 같고 나는 맞는 거 같은 생각은 늘 점검해야 합니다. 그 생각의 결과로 사랑이 식어가고 오히려 비난과 판단으로 이어지면 아무리 내가 옳은 거 같아도 주를 위한 결과가 아닌 것입니다. 예배, 감사, 기쁨이 점점 사라지는 결과를 스스로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위한 성도의 삶이라면 절대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거하시는 성령의 전을 만들어 가는 것이 성도입니다. 하나님이 거하는 성도의 가장 큰 변화는 사람을 보는 눈이 십자가의 지혜의 눈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를 사랑하는 관계 용납 이해 관용 섬김을 할 수 있는 존재로 바뀌어 갑니다. 하나님이 거하시기 이전 삶은 세상의 지혜를 의지하기에 경쟁 싸움 시기 질투로 피곤한 삶을 삽니다. 그러나 성도는 피차 불쌍히 여기며 관계를 맺어가지 원수로 삼지 않습니다. 긍휼히 여기지 못함이 바로 십자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증거요 시기 질투 분쟁 당파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모습이요 성경에 기록하여 전하여 주는 목적은 오고 오는 세대에 모든 인간들에게 나타나는 반복적 실수가 가능하기에 기록한 것입니다. 똑 같은 인간들이 교회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를 올바로 알고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지어져 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더 나은 교회가 있나 하고 찾습니다. 여러분 어느 교회가 더 나은 교회일까요? 우리 교회가 다른 교회 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교회가 나은 교회입니다. 내가 다른 성도 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성도가 좋은 성도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아주 괜찮은 교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지식 은사가 넘쳐나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서 만큼 긴 편지가 없습니다. 꾸중 할 것이 많은 교회 입니다. 고쳐야 할 것이 참 많은 교회입니다. 그래서 가장 길게 쓴 것입니다.
고전8장1절을 보시면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아는 줄 생각하면 마땅히 알 바를 모르는 것이다.
 
세상적 지혜는 남 보다 내가 낫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 즉 십자가의 지혜는 나의 부족을 여실히 드러내줍니다.
교회가 겪는 수 많은 어려움은 세상적 지혜 있는 사람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유명한 사람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내가 지혜롭고 지식이 있고 경험이 있어 너 보다 내가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이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지혜가 있다고 생각이 들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래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정확하게 문제점을 지적하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명한 위인으로 세상에 남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가장 어리석게 가장 미련하게 가장 죄인의 모습으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지혜입니다. 그래서 지혜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를 자랑하는 어리석은 자는 자신을 자랑하나
하나님의 지혜를 자랑하는 자는 십자가의 도를 사랑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찬양: 

십자가 그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