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25일(화) 벧엘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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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린도전서 8:1~13>  노득희 목사    

지식보다 사랑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요새 지식의 중요성이 날로 커집니다. 인터넷에서 가장 방문자가 많은 곳이 지식 검색 사이트입니다. 요즘 성공의 제일 요소 중의 하나가 지식과 정보입니다. 지식과 정보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러나 지식은 폐해도 많습니다. 가장 큰 폐해는 지식이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교회에서 분쟁이 일어납니까? 자기가 더 많이 알고 있고 더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왜 고린도 교인들 사이에 분쟁이 많았습니까? 진짜 지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지식이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지식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상 지식이 없는 행동입니다(2절).
 
 조금 더 알려고 하면서 조금 덜 판단하려고 하십시오.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생각하고 남을 판단하고 무시하고 정죄하지 마십시오. 소크라테스는 말했습니다. “나는 모른다는 것만을 안다. 너는 너 자신을 알라!” 철학자란 누구입니까? “나는 지식이 많지 않은 존재다!”라는 것만 알고 겸손해진다면 누구보다 위대한 철학자가 됩니다. 더 나아가 누구보다 위대한 성도가 됩니다. 공동체 생활에서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많이 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성도로서 가장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선악을 분별할 줄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태초 이래로 사탄이 인간을 꾀었던 방법입니다. 사탄은 선악과를 먹으면 선악을 분별할 줄 알게 된다고 인간을 속였습니다. 그 속임수에 아담과 하와가 넘어갔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그런 속임수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가장 큰 교만은 “나는 선악에 대한 분별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그런 교만한 생각은 반드시 패망을 낳습니다.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최고의 고백은 “저는 잘 몰라요.”라는 고백입니다. 가끔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의견 차이를 놓고 자신만이 확실한 대답을 가진 것처럼 주장하면 결코 성공적인 사회생활 및 교회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갈등이 생길 때 지식을 앞세워 해결하려는 것은 좋은 모습도 아니고 좋은 결과도 낳지 못합니다.

사랑으로 덕을 세우십시오 

본문 1절에서 “지식은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 했습니다. 교회생활에서 지식은 교회를 무너뜨리지만 사랑은 교회를 세운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식을 내세워 누군가를 판단하는 사람은 사실상 가장 무식한 사람이고 사랑을 내세워 누군가를 품에 안는 사람은 사실상 가장 유식한 사람입니다.
지식이 많은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문제는 자기 지식을 최고의 지식으로 생각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사랑도 없이 지식을 가진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지식은 무식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2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지식이 많아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닌 무식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바울은 고백을 했습니다. 예수를 아는 지식은 바로 섬김과 사랑입니다.
지식을 자랑하고 지식으로 판단하고 지식으로 사람을 꾀어 편을 만들고 하는 일은 믿음이 약한 자를 멸망하게 한다고 바울은 11절에 우려를 표시합니다. 예수를 아는 지식은 자기를 낮추고 관용을 베풀며 서로 화목을 이루어 냅니다.
예수를 아는 지식으로 자녀를 양육하고 이웃을 섬기며 교회를 사랑합시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