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26일(수) 벧엘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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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린도전서 9:1~15>  노득희 목사

내가 복음을 위하여 1

고린도 전서 9장을 두 번에 걸쳐서 묵상을 하겠습니다.
요즘 성경은 장 마다 소 제목을 소개합니다. 참 유용하지요. 고린도전서 8장의 소제목은 ‘우상에게 바친 제물’이고, 10장의 소제목은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입니다. 그렇다면 그 중간에 들어있는 9장도 역시 우상 숭배에 대한 이야기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게 자연스러운 글쓰기의 흐름입니다. 그런데 9장의 주제는 그것과 달리 ‘사도의 권리’로 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우상숭배 문제를 짚으면서 전체적인 문맥의 단절 위험을 무릅쓰고 사도의 권리 운운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두 번에 걸쳐 공부해봅시다.
 
오늘날 우리는 바울을 위대한 사도로 여기지만 초기 기독교 당시에는 사정이 그렇지 못했습니다. 바울의 사도성이 자주 부정되었습니다. 한 두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그리고 여러 집단에 의해서 부정되었습니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예수님이 공생애 중에 제자로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초기 기독교를 심하게 박해했습니다. 그가 훗날 부활의 주님을 만나 회심하고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고 말했지만, 기독교 지도자들에 의해서 곧 인정받지는 못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복음에 대한 바울의 진정성이 받아들여지기는 했지만 유대교와의 어느 정도 관계를 맺고 있던 유대 기독교와 달리 주로 이방인들이 주축이 되는 교회를 세움으로써 신학적으로 예루살렘 교회와 적지 않은 충돌을 빚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종종 사도성이 부정당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어느 정도 의기소침해지긴 했지만 침묵만 지키지는 않았습니다. 자신의 사도적 권위를 끝까지 주장했습니다. 고전 9:3절에서 분명하게 말하듯이 자기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자기를 적극적으로 변호했습니다. 자기는 사도로서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말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사도의 권리를 세 가지나 예로 들었습니다. 4절에서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고 하였고, 5절에서 ‘우리가 야고보나 베드로처럼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그리고 6절에서 ‘일하지 않을 권리가 없겠느냐.’고 했습니다. 그 뒤로 구약 신 25:4절을 거론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교회에서 경제적인 도움을 받는 건 당연하다는 논리를 길게 설명했습니다. 그가 인용한 신명기에는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건 실제 소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는 겁니다. 고전 9:14절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먹고 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로 말하면 목사 사례비는 당연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다른 사도들은 결혼생활도 하고 교회로부터 사례비도 받았지만 바울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는 독신생활을 하면서 가죽으로 천막 만드는 노동에 종사했습니다. 나중에 빌립보 교회에서 상당한 정도로 경제적인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그게 일정하지 못해서 먹고사는 문제는 스스로 해결했습니다. 그를 자비량 선교사라 하는 것도 여기에 기인합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바울이 사도가 아니니까 사도가 받아야 할 그런 예우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사도성이 부정당하는 바울의 입장이 곤혹스러웠다는 사실은 갈라디아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세운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에 예루살렘 교회에서 파송한 이들이 와서 바울의 설교를 비판했습니다. 그 소문을 들은 바울은 갈 1:6절에서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더 나가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저주가 임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도 그렇고, 갈라디아서에서도 바울은 자신의 설교를 비판하는 자들을 향해서, 이것은 결국 자신의 사도권을 부정하는 것인데, 강력하게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그런 내용으로만 보면 당시부터 교회에 갈등과 다툼이 많았다는 게 분명합니다.

이런 비난 비판 그리고 다툼 가운데 사도 바울은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나요?
여러분은 이런 경우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시나요? 진정한 신앙은 자신을 향한 비난 비판 그리고 갈등이 주어졌을 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찬양: 

부름 받아 나선 이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