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7:23~30> 노득희 목사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게 되는 동기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자녀 때문에 예수 믿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28절에서 “주여 옳소이다만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는 자식의 문제를 끌어안고 부스러기 은혜만이라도 기대하는 이 여인의 말에서 절박한 심정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여인이 가졌던 큰 믿음이란 어떤 믿음이었을까요?
- 이 여인의 믿음은 불리한 상황의 조건을 극복한 믿음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좇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이 여자는 헬라여자라고 했습니다. “수리”라는 말은 시리아라는 뜻이고, “보니게”는 페니키아라는 뜻으로서, 오늘날의 표현대로 한다면 이 여인은 “시리아의 베니게”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이 여인은 이방여인입니다. 그 당시 여자는 남자에 비해 이류 인간으로 취급되고 있었습니다. 탈무드에 보면, 옛날 유태인 남자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하나님께 세 가지의 감사기도를 드렸는데 하나는, 내가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인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 드리고, 둘째는, 내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 드리고, 셋째는, 내가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여인은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믿음에 도달했던 사람입니다.따라서 자신의 삶의 불리한 조건을 극복한 이 여인의 믿음을 우리가 오늘 배워야 할 믿음의 자세인 것입니다.
- 이 여인의 믿음은 냉소적인 거절을 극복한 믿음이었습니다.
27절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러분, 이것이 허락입니까? 거절입니까? 거절이죠. 거절도 그냥 거절이 아니라 거의 모욕에 가까운 거절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도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흥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적어도 피상적으로 관찰하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편견이 아니라 테스트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이 테스트를 통해서 이 여인이 “어떻게 반응하나?”를 확인하고 싶어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의식하던 의식하지 않던 우리의 삶은 테스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을 하나님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어떤 문제로 인하여 절박한 가운데 “주님, 나를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했을 때, 우리가 종종 경험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무런 대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침묵을 거절로 해석하여 “그러면 그렇지. 주님이 내 기도에 응답하실리가 없어”하고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자조하면서 신앙의 자리에서 쉽게 후퇴해 버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구체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 이 여인의 믿음은 주님의 은혜에 매달리는 믿음입니다.
28절을 읽겠습니다.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자존심 때문에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28절에서 여자가 예수님을 뭐라고 불렀습니까? “주여” 이 고백이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성서학자는 마가복음 전체를 통해서 예수님에게 처음 나와서 “주여”라고 부른 사람은 이 여인 밖에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미 이 여인이 예수님 앞에 나오기 전에 “예수가 주님”이라는 믿음이 그 마음속에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여기 이 여인의 “주여”라는 이 표현은 단순하게 예수님을 그저 질병만 고치는 분 정도로 인식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메시아, 자기 삶의 주인, 자기 인생을 구원하시고, 자기 인생을 새롭게 하시고, 자기 인생을 하나님의 기대처럼 빚어 만들 수 있는 나의 구원자, 나의 주님이라는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다가오는 2021년도에는 주님을 신뢰하고 더욱 더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여 이 여인처럼 큰 은혜를 경험하시고 체험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