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9일(수) 벧엘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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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3:1~6> 노득희 목사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 

가까운 목사님 동생이 많이 아프다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L.A. 에 있는50살 난 여동생이 병원중환자실에 있다고 합니다. 모든 검사를 다했는데 병명을 모른다고 하니 이 시국에 얼마나 답답할까요?

오늘 본문은 한 쪽 손 마른 사람을 예수께서 안식일에 고쳐주신 사건의 기록입니다. 1절을 봅니다.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라고 마가는 다시를 강조하며 안식일에 관한 논쟁의 연속성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단순히 한 사람의 병 고침이 아니라 안식일의 중요성을 다시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다시 반복할까요? 예수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하고 잘못된 생각을 고집스럽게 갖고 가는 죄 때문입니다. 2절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고 합니다. 이전에는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하여 논쟁이 되었는데 이제는 예수께서 안식일을 범하는가를 두 눈 부릅뜨고 살피는 중입니다. 누군가의 잘 못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면 회당 안의 불행한 손 마른 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 손 마른 자에 대한 유대전승 및 문헌에 의하면 이 사람 직업이 석공이었다고 합니다. 특별히 석공의 오른 손이 말라서 일을 할 수 없는 처지의 불쌍한 사람입니다.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장이 어떤 사고로 그리 되었다고 하는데 안식일이면 회당을 찾아옵니다. 그곳이 유일한 희망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외에는 방법이 없는 사람. 은혜만을 기다리는 사람이지요. 동생의 아픔을 주님께 기도하는 오빠 처럼. 예수의 눈은 바로 이 사람에게 가 있고 사람들(누가복음은 바리새인)의 눈은 예수에게 가 있습니다. 예수는 긍휼의 마음으로 이 사람들은 완악한 마음으로 각각 다른 대상을 주시를 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이 지금 회당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회당은 오늘의 교회입니다. 교회 안에 예수의 눈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사람들의 눈이 있습니다. 곧 우리들의 눈 입니다. 그 눈들은 어디를 향하고 있어야 하나요? 마가가 지금 질문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한 가운데 일어서라” 고 하십니다. 이 요구는 안식일의 참 의미를 회당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깨우치기 위한 것입니다. 안식일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완전한 창조 사역을 기리고 또 참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구원의 날입니다. 바로 이날에 지금껏 하나님의 창조 형상에서 어그러진 불구의 몸으로 고생하며 참 평안을 몰랐던 손 마른 사람에게 온전한 몸으로 되돌려 주는 것처럼 안식일을 참되게 보내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이 일(구원)을 위하여 예수께서 오신 것입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다들 잠잠했다고 합니다. 선을 행하는 것을 생명을 구하는 것이요 악을 행하는 것은 죽이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는 선을 행하여 손 마른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이 완악하여 악을 행하여 손 마른 사람에는 무관심 했습니다. 오히려 예수를 고발할 생각으로 마음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예수의 말에 잠잠했던 사람들은 회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예수를 죽일까를 의논합니다.

자 이제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확실히 배우고 마음에 담아 둘 메시지가 있습니다. 예수의 마음 과 눈을 품어야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손 마른 사람을 교회에 보내십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영혼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안식일을 지키는 법이 아닙니다. 생명의 법이 필요합니다. 곧 성령이 충만한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무장 된 성도들이 있는 교회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회당이지요. 비대면 시대에 시작되는 영상목회 프로그램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남과 성경공부가 시작될 것입니다. 예수의 눈과 마음이 있는 프로그램 그리고 생명을 살리는 방송이 되기를 바랍니다.
 
<방송국 이름을 무엇으로 하면 좋을까요?>

찬양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