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15일(목) 벧엘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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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12:7~10>  노득희 목사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신앙생활 하면서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이 분명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는데 나는 그 은혜에 완전히 만족을 못하고 산 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도 여러 계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계시를 하나만 보아도 평생 잊지 못할 텐데 여러 번 보았다니 대단하지 않나요. 그 계시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지극히 크다고 표현을 했습니다. 그러니 바울이 얼마나 신령했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그 환상을 일인칭으로 쓰지 않고 삼인칭으로 쓰며 환상 자체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능력이 극대화 되는 것입니다.

연이어 바울은 하나님의 큰 뜻을 알립니다. 내가 혹시 그 일로 자고(교만)할까 하여 하나님이 내게 육체의 가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이 그렇게 분별이 없어서 사단의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일까요? “네” 그렇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압니다.

육체의 가시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학자들 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종합해 보면 안질,간질,우울증,만성두통 등…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지병 가운데 하나인 듯 합니다. 늘 다른 사람의 병을 예수의 이름의 고치는 바울에게 자신의 질병은 못 고치니 아마 곤란한 일을 많이 겪었을 것입니다. 소위 “너나 잘해” 라는 거짓 교사들로부터 사도성의 정통성을 비난 받는 요소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이럴 때 하나님의 영광이 피해를 보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고쳐달라는 기도를 종종 하곤 합니다. 진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일까요?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지 않습니다. 세 번 이나 기도했다는 것으로 보아 사람이 할 수 있는 기도의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그러나 응답은 거절입니다. 그런데 참 감사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는 것입니다. 물론 바울이 받은 응답이요 이유입니다. 바울의 교만을 우려하는 것 보다 그리스도의 능력의 온전함이 이유였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의 시작 과정 결과를 내가 이루어야 할 어떤 것에 초점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아닙니다.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입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에게 어떻게 나타났는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능력 그 자체입니다. 그 능력이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무조건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그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고 그 능력이 나타나기 위하여 우리에게 선결되어야 할 조건은 우리의 약함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신앙의 원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약하여 지고 그리스도의 능력은 강하여 지는 것입니다. 성경적 신앙 믿음의 원리는 내가 믿음이 좋아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음이 온전하여져서 그리스도께서 산을 바다에 던지시는 주체라고 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마치 내 안에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아주 강력한 진 과 같은 이론 경험 지식도 얼마든지 저주의 바다에 던져 질 수 있습니다.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아집과 고집에서 벗어나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습니다. 지식에 까지 새로워 질 수 있습니다. 배설물로 여길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바울은 도리어 크게 기뻐합니다. “도리어” 원래 생각과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난 다음의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세상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 어떤 가시도 고통도 해결 된 것이 없는데 하나님의 생각을 아니 너무 기쁜 것입니다. 이것을 예배자가 경험하는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의 생각 그 뜻을 깨닫고 크게 기뻐하는 것. 내 생각과 다른데 하나님의 생각에 맞추니 너무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이지요. 약한 것들이 여전히 괴롭게 합니다. 질고 능욕 궁핍 박해 곤고… 이것조차 이제 기뻐하게 됩니다. 놀랍지요! 그 가운데 그리스도의 강함이 내 안에 충만합니다. 노래가 나옵니다. 춤이 나옵니다. 감사가 터져 나옵니다.

오늘도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그 음성으로 크게 기뻐하시는 하루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찬양

약할 때 강함되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