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1일(수) 벧엘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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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14:66-72 전재준 목사

  1. 대제사장 집에 잡혀온 예수님은 침을 맞기도 하시며 손바닥과 주먹으로 구타를 당하며 갖은 희롱을 당하고 계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멀찍이 떨어져서 따라오다가 아랫뜰에서 불을 쬐고 있었습니다.

  2. 그런 베드로에게 여종 하나가 와서 그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다며 베드로를 알아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부인하면서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앞뜰로 성급히 자리를 옮깁니다. 그런 그를 보고 여종은 주변사람들에게 고하며 이 사람은 그 도당이라 말합니다.

  3. 베드로는 또 부인했지만 조금 후에 곁에 서있던 사람들이 ‘너도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도당이라’ 말하며 그를 추궁합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저주하며 맹세까지 하면서 예수를 알지 못한다고 세 번째 부인하게 됩니다. 그때 마침 닭이 두 번 울게 되고 베드로는 예수께서 자기에게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하리라는 말이 기억되어 밖으로 나가 통곡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마26:75)
     
  4. 베드로는 예수님의 가장 총애 받는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기적의 현장에 빠지지 않고 함께 했었으며 특히,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 라는 신앙고백은 그가 천국의 열쇠를 받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예수님이 잡히시자 멀찌감치 떨어져 지켜볼 뿐이였고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라는 고백이 무색하게도 그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됩니다.
     
  5. 우리의 모습도 이와 같을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울 때는 주님을 향한 뜨거운 믿음의 고백이 있었어도 막상 고난과 역경이 닥쳐 삶이 어려워지거나 힘들어 질 땐 믿음도 신앙도 부인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또 이것이 반복되어 습관이 되어버리면 죄책감도 점점 사라지게 되고 그렇게 멀찌감치 떠나있어도 나쁘지 않다 라는 마음이 생기기까지 합니다.
     
  6.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까지 하면서 주님을 모른다고 할 때에 닭이 두 번 울게됩니다. 그때 베드로는 자신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통곡합니다. 그에게 있어 ‘닭 우는 소리’는 그저 새벽을 알리는 신호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는것 이였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닭 우는 소리’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떠나 사는 나의 잘못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신호가 있어야 합니다. 말씀이 생각나게 하고 나의 죄를 돌아보게 하며, 지금의 내 모습을 볼 수 있게 만드는 그런 신호 말입니다. 그것은 강단을 통해 선포되는 찔림이 있는 설교로 나타날수도 있고, 사업의 어려움으로 올수도 있고, 건강의 신호로 올 수도 있고, 자녀들이 어려움을 당하거나, 또는 갑자기 나에게 닥쳐오는 사고로 올 수도 있습니다.
     
  7.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오는 그 신호는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겪어보고 아픔을 겪어 보면 하나님의 말씀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비로소 알게 됩니다, 생각건대 어쩌면 코로나19로 인한 고난과 역경도 하나님의 신호가 아닐까 합니다. 나 자신을 향한, 우리 벧엘교회를 향한, 아니 전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신호와 음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베드로가 닭 울음소리에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듯이 우리도 그 신호와 그분의 음성을 통해 사랑스레 아픔과 기쁨을 주시는 주님께 나아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10:27)

묵상해봅시다

  • 삶에서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혹은 믿지 않는 사람들 틈에서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진 않았나요?
  • 나에게 있어 닭 우는 소리는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 하루 빨리 이 사태가 진정되기를 더욱 기도합시다.

함께 찬양해요

날마다 숨쉬는 순간 마다(조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