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준 목사
‘십자가를 아파봄’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53:5)
- 우리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라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가 우리의 상징이고 증표요 걸아가야 할 길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꺼려합니다. 자신이 믿는 종교의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십자가의 도’를 따르려 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것은 아픔이고 고난이고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십자가를 잃어버리는 순간 하나님의 은혜도 잊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흔적을 지니고 살고자 한다면 그 가운데 반드시 오게 되는 십자가의 고난 또한 함께 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그저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는 다른 우상이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 이에 바울은 십자가의 도를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2:20)
- 이처럼 ‘십자가의 도’란 무엇일까요? 바로 내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온전히 죽고 이제 예수로만 사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도’입니다. 결국 내가 죽어야 합니다. 특히 나의 자아가 죽고 나의 욕심이 죽고 나의 고집이 죽어야 합니다. 죽고 죽어서 이제 한 평생 오직 예수로만 사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죽은 사람은 더 이상 두려움도 걱정도 근심도 없습니다. 또 남을 향한 미움도 원망도 없습니다. 알량한 자존심도 성질도, 혈기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죽은자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 우리의 삶이 힘들고 불행한 것은 환경이나 사람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힘들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내 자아가 아직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환경이나 사람이 힘들게 느끼는 것도 그 이유입니다. 자아가 죽기 않으니 나의 뜻대로 되지않는 환경이나 사람이 힘들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죽음이 곧 능력 있는 삶의 시작입니다. 그때 비로소 내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나를 통하여 역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만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십자가의 도입니다. 오늘 하루 주님의 십자가를 함께 아파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내 자아가 죽고 오직 예수님 한 분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성금요일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온전한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이시자 동시에 온전한 인성을 지니신 인간이십니다. 그분은 육신을 가졌기에 배고파 하셨고, 피곤해 하셨고 힘들어 하셨고, 고통스러워 하셨습니다.(중략) 인간의 모든 고통을 체휼하신 주님, 그분이 나의 고통을 다 아십니다’
무명의 목사
묵상해봅시다
- 아직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지 않은 나의 자아가 있나요? (음란, 교만, 혈기…)
- 고난주간입니다. 한 주간 ‘십자가’를 온전히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 하루 빨리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기를 더욱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