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10일(목) 벧엘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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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린도전서 15:1~11>  노득희 목사    
 
기독교 교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예수 부활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합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들로부터 3일 만에 부활하셨기에 예수를 믿는 우리도 부활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문제는 부활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서로 대답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떤 대답을 하실 것인지요? 어떤 사람은 그것을 문자 그대로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서에 나온 나사로, 야이로의 딸이나 나인 성 과부의 아들처럼 말입니다. 이런 생각은 잘못입니다. 사람은 본래 죽었다가 소생할 수 없지만,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성경이 가리키는 부활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소생한 사람은 다시 죽지만 부활의 예수님에게는 다시 죽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부활하신 것이라면 자신을 재판하고 죽음에 넘겨준 산헤드린 공의회 종교 권력자들과 로마 총독 빌라도 앞에 나타나셨어야만 합니다. 부활의 예수님은 제자들이나 제자집단에 속한 일부 사람들 외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세상에 계속 남아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전하셨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더 이상 세상에서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제자들과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가장 중요한 복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근거가 무엇인가요? 부활의 실질적인 의미는 무엇인가요?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고리도교회의 질문에 깊이 신중하게 답을 합니다.

게바부터 바울까지

예수 부활 문제를 가장 진지하고 확실하게 접근한 사람은 바울입니다. 그는 고전 15장 전체를 부활에 대한 설명으로 채웠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부활 이야기는 남에게 전해들은 간접 진술이지만 고전 15장은 바울의 직접 진술입니다. 오늘 우리가 설교 본문으로 읽은 대목에는 특별한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 부활의 증인 목록입니다. 게바, 열두 제자, 오백여 형제, 야고보, 모든 사도, 바울이 그들입니다. 한두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상황에서 경험된 것이기에 예수 부활이 확실하다는 사실을 바울은 여기서 강조합니다. 오백여 형제들에게 일시에 경험되었다는 것이 실제로 무엇인지에 관해서 바울은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신약성경의 다른 데서도 이에 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부활 경험 이야기는 대개 소수 사람과 관계됩니다. 사도행전에 거론되는 120명도 숫자에서 크게 차이가 납니다. 도대체 그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무엇을 본 것일까요?
 
당시에도 부활에 대한 몇 가지 오해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부활을 논증하는 고전 15:50절에서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부활을 실제 육체의 소생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을 비판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사두개인들과의 부활 논쟁에서 부활 때에는 장가가거나 시집가는 일이 없고 하늘의 천사들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2:30). 부활이 혈과 육이 아니라고 해서 혼령에 불과한 것은 아닙니다. 복음서의 설명에 따르면 부활의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먹기도 했다고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많은 이야기를 썼습니다. 그동안 새벽 묵상을 통하여 고린도전서를 공부하면서 당시에 실제로 어떤 문제가 고린도교회에서 이슈가 되었는지를 잘 알게 되었습니다. 분파, 은사, 영지주의, 먹을거리, 기독교인의 윤리 등등에 대한 많은 것들을 거론한 다음에 바울은 편지 말미에 가장 중요한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그게 바로 15장의 부활입니다. 예수 부활이야말로 바울이 생각하는 복음의 진수입니다. 3,4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이 구절에 복음의 진수를 가리키는 세 문장이 나옵니다. 1)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습니다. 2) 그는 묻히셨습니다. 3) 그는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무덤에 묻혔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서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이 두 문장이 말하는 것은 예수님의 역사성입니다. 그는 우리와 똑같은 역사 안에서 일상을 살아내셨습니다. 반면에 그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문장은 우리의 일상을 벗어납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말은 예수님이 너무 그리워서 환영을 보았다는 뜻일까요?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열정적으로 전했다는 뜻일까요? 이런 것만으로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내일 좀 더 부활에 대하여 공부 할 것입니다. 오늘 부활에 대한 실제 역사성과 그리고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의 의미가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가를 Covid-19 시대에 깊이 묵상해 보시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은 복음의 진수입니다. 부활 신앙이 없으면 참 비참한 교인 즉 자기를 위하여 교회 다니는 사람인 것입니다.

찬양:

주님께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