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26일(목) 벧엘 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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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13장> 노득희 목사

느헤미야 13장은 느헤미야 12장과 잠시 시간적인 공백이 있습니다. 성벽재건과 성벽 봉헌식을 마치고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과의 약속(다시 돌아오겠다는) 때문에 왕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몇 일후 다시 왕에게 요청하여 말미를 정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데 왕을 만난 시간은 몇 일이지만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떠나 있는 시간은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적어도 1년 이상 되지 않았을까요?)

느헤미야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예루살렘에서는 그 짧은 시간에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가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느헤미야가 다시 돌아왔을 때 4가지의 큰 죄악이 있었습니다.

  1. 과거 발람 사건으로 영원히 이스라엘의 총회에는 들어올 수 없는 암몬 사람인 도비야가 버젓이 제사장 엘리아십과의 관계 속에서 성전에 곳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른 본 느헤미야는 도비야의 세간을 다 꺼내고, 다시 원래의 것으로 채워 넣었습니다.
  2. 성전을 섬기는 레위인과 문지기, 노래하는 자들에게 주어야 할 것들을 주지 아니함으로 이들이 생계 때문에 다 성전을 떠나고 없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다시 이들을 불러오고 직분을 맡기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도록 조치합니다.
  3. 안식일을 지키도록 한 것을 어겼습니다. 안식일임에도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장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느헤미야는 안식일에 문을 닫게 하고 그 주변을 얼씬 거리는 사람마저 경계하여 있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4. 이방인과의 통혼 문제도 심각했습니다. 대제사장의 자손이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어 있을 정도로 문제는 심각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들 중에 일부를 때리고 털을 뽑아 버림으로 경계를 삼았습니다. 그리고 맹세하여 그렇게 행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와 같은 개혁을 행할 때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이와 같은 노력과 애씀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하는 모습이 특징적입니다.

  1. 사람들은 하드웨어적 요소와 인적 자원, 컨텐츠 만으로 개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헤미야 마지막 장을 통하여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스룹바벨과 느헤미야을 통해서 성전과 성벽이 재건되고,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내적 개혁을 통해서 말씀과 성전 제사와 직분과 이들이 장기적으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이전의 모세의 때와 같이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온 이스라엘, 남은 자 이스라엘은 온전해 질 수 없었습니다.

    즉, 이와 같은 것이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사람과 인류가 변화되기에는 충분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 성령의 역사가 함께 하지 않는다면 인간적인 모든 개혁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다시 옛 죄악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에스라, 느헤미야는 그와 같은 메시지도 함께 주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보기에 멋진 개혁과 변혁을 일구어 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에는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이들의 외부적 환경이 아닌 내부적으로부터 오는 개혁이 일어나야만 한다는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적 생명의 탄생, 이것을 중생이라고 하는데 이와 같은 새 생명의 탄생이 없이는 진정한 개혁이란 불가능한 것이 되고 말씀과 기도로 지속적 성장 성숙이 일어나지 않으면 또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모습을 경계해 주는 귀한 말씀이 오늘 13장닙니다. .
     
  2. 반복적인 새로고침이 필요합니다.

    중간 중간 화장을 고쳐야 하듯이, 우리의 신앙은 지속적인 개혁이 필요한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출동하고, 에스라가 출동했어도 개혁은 다시 반복되어야만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새로워지는 것은 매일매일 이루어져야 하며 그것은 현상 유지가 아니라 성장을 이루는 것입니다. 현상유지적 신앙생활은 퇴보입니다. 날마다 새로운 은혜가 필요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회개가 신앙생활에 필수임을 인지해야 합니다. 탁월한 지도자의 부재가 아니라, 그 만큼 우리의 본성이 타락해 있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는 느헤미야처럼(미리 예상하지는 못했겠지만) 개혁을 일상으로 생각하고 정기적인 자기 평가와 말씀 안에서 새로 고침의 사역을 꾸준히 감당해야 절대적 사명을 깨닫게 됩니다.

찬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