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6:45~56> 노득희 목사
물위로 걸으시는 예수는 나의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배를 띄워 벳새다로 향하던 제자들은 중간에서 거센 바람을 만나서 노를 젖는데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그 때 시간은 새벽 3시에서 6시 사이였는데, 그 어스름한 새벽에 호수 중간에서 큰 난관을 만난 것입니다. 끙끙대며 노를 젖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누군가가 그 거센 바람을 거슬러 물위를 미끄러지듯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유령이다!”라고 하면서 소리만 질러댔습니다. “안심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배에 오르셨는데, 그러자 바람은 언제 불었느냐는 듯이 잦아들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배에 타시자 마자 바람이 잦아드는 것을 보고 또다시 많이 놀랐습니다. 성경은 이것에 대해서 제자들이 물고기 다섯 개와 떡 두 덩어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일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그 일을 통해 마음이 밝아진 것이 아니라 둔해졌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이 인도해 가시는 우리의 삶,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 속에도 난관이 있고 반대가 있을까요? 캄캄하고 힘겹기만 한 그런 상황이 생겨날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당연히 그럴 수 있습니다. 거센 바람처럼 우리를 거스르는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고, 캄캄한 호수 위의 작은 배처럼 두렵고 힘겨운 상황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 속에 주님은 들어오십니다. 바람 부는 바다 위, 배를 타고도 건너지 못할 바람 부는 바다 위를 걸어서 말입니다.
거센 바람이 부는 바다 위를 걸어 오셨던 예수님은 제자들을 그냥 지나쳐 가시려고 했습니다. 정말 이상하지 않습니까? 제자들이 바람 때문에 고통 당하는 것을 보시고서 제자들에게로 오셨다면 빨리 배에 올라 타시고 제자들을 도와 주셔야 하는데 그냥 지나치려고 하셨다니, 혹시 우리 성경이 잘못 기록되었거나 혹은 잘못 번역된 것이 아닐까요? 저도 그런 생각이 들어서 영어성경과 원어성경까지 다 뒤져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다 똑같았습니다. 모든 성경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로 오셨지만 그냥 지나쳐 가시려고 했다고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행동이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이상한 행동이라면 분명히 여기에도 무슨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마가복음은 제자들이 끝까지 예수님께서 바라셨던 답을 내놓지 못한 이유가 그들이 오병이어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결국 예수님께서 물위를 걸으신 사건도 이해할 수 없었다고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만약 제자들이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서 무언가를 확실히 배웠다면 물위를 걸으셨던 것에 대해서도 그렇게 반응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오병이어 사건에서 반드시 붙잡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놓친 것은 무엇일까요? 제자들이 오병이어 사건에서 놓쳤던, 정말 놓쳐서는 안되었던 것은 바로 예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욥기 9장 8절과 11절에는 아주 명확하게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홀로 하늘을 펴시며 바다 물결을 밟으시며,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고…” 만약 제자들이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 이시라는 것을 발견했다면, 물결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도 하나님이신 줄 당연히 알아보았을 것이고, 그러면 그들은 예수님을 그냥 지나가시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환영하고 모셔 들이며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전에 그것을 깨닫지 못했던 제자들은 지금도 그것을 깨닫는데 실패했고, 그래서 물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유령으로 착각하며 두려워하기만 했던 것입니다. 오병이어 사건이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으셨던 사건 또한 제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한 실습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이 두 사건을 통해서 배우고 또 확신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진리는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 이시라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당신의 백성을 40년 넘는 세월 동안 한 번도 굶기지 않으시고 넉넉하게 먹이시고 또 물 위를 성큼 성큼 걸으셨던 구약성경의 하나님이 바로 지금 눈 앞에 서 계신 그 예수님 이시라는 것, 그리고 그 하나님이 지금도 그들의 영적인 필요와 육체적인 필요를 모두 채워주시며, 그들이 처한 모든 곤경 속으로 성큼 성큼 걸어 들어오셔서 도와주시고 건져주시는 분 이시라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두 사건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확신시켜 주시기를 원하셨던 가장 중요한 진리였습니다. 우리가 본문을 공부하면서 얻어야만 하는 확신 또한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이십니다.
내가 처한 난관이나 어려움이 있습니까? 그 속에서 주님을 신뢰하게 해 달라고. 그 속에서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믿고 또 붙들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래서 그 믿음의 능력을 경험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